서론|금융공학, 안전하다는 믿음의 시작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떠올리면 많은 사람들이 먼저 ‘서브프라임 모기지’라는 단어를 말합니다. 하지만 그 대출 자체만으로 세계 경제가 무너졌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진짜 문제는 그 대출이 금융공학이라는 이름 아래 어떻게 포장되고, 얼마나 안전한 것처럼 보이게 되었는가에 있었습니다. 당시 금융시장에는 묘한 확신이 퍼져 있었죠. 위험은 쪼개면 사라진다는 믿음, 숫자로 계산하면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 말입니다. 그 믿음은 전문가들 사이에서조차 너무 당연한 전제로 받아들여졌고, 그래서 오히려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이 정도면 괜찮다”, “과거 데이터가 증명한다” 같은 말들이 일상처럼 오갔습니다. 그때는 다들 합리적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합리성 자체가 거대한 착시였다는 걸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금융공학은 위험을 없앤 것이 아니라, 위험을 보이지 않게 만들었을 뿐이었습니다.
본론. 1|금융공학 착시가 만든 구조적 함정
금융공학의 핵심 논리는 단순했습니다. 여러 개의 위험한 대출을 섞어 평균을 내면 위험이 줄어든다는 생각이었죠.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하나하나 보면 불안하지만, 수천 개를 묶어 채권으로 만들고, 다시 이를 쪼개어 다른 금융상품으로 재구성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고 여겼습니다. 이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 MBS와 CDO 같은 구조화 상품이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입니다. 위험을 분산한다는 논리는 수학적으로는 그럴듯했지만, 현실의 인간과 시장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주택 가격이 동시에 하락할 수 있다는 가능성, 차주들이 비슷한 시점에 연체할 수 있다는 사실은 모델 속에서 지나치게 가볍게 취급되었습니다. 계산식 안에서는 서로 독립적인 사건이었지만, 현실에서는 모두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 구조가 너무 복잡해졌다는 점입니다. 상품을 만든 사람조차 전체 위험을 정확히 설명하지 못했고, 투자자는 그걸 이해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신용평가사의 등급을 믿었고, ‘AAA’라는 세 글자에 안도했습니다. 숫자와 그래프, 정교한 모델은 사람들에게 묘한 안정감을 줍니다. 이건 감정의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불확실한 세상에서 확실해 보이는 공식은 생각보다 강력한 위로가 되니까요. 그래서 금융공학은 점점 위험 관리 도구가 아니라 안심 장치로 변해갔습니다. 위험을 관리하는 대신, 위험을 잊게 만드는 역할을 하게 된 셈입니다.
본론. 2|2008년 금융위기와 집단적 착각의 확산
이 착시는 개인 차원이 아니라 시스템 전체로 퍼졌습니다. 은행은 위험을 팔았다고 생각했고, 투자자는 위험이 낮다고 믿었으며, 감독기관은 시장이 스스로 균형을 잡을 거라 기대했습니다. 그 누구도 완전히 틀렸다고 말하기 어려운 논리였지만, 모두가 조금씩 현실을 외면하고 있었던 건 분명합니다. 특히 문제였던 건, 이 구조 안에서 위험을 감당해야 할 주체가 흐릿해졌다는 점입니다. 대출을 실행한 은행은 곧바로 상품을 팔았고, 상품을 산 투자자는 다시 다른 상품으로 넘겼습니다. 책임은 분산됐지만, 위험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어디에 있는지 모르게 되었죠.
주택 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하자 이 착시는 순식간에 무너졌습니다. 계산으로 분산됐다고 믿었던 위험이 한꺼번에 모습을 드러냈고, 그제야 모두가 같은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상품의 실제 가치는 얼마인가?” 그런데 이미 늦었습니다. 아무도 정확한 답을 내놓지 못했고, 시장은 공포에 잠겼습니다. 금융공학이 만들어낸 안정감은 믿음이었던 만큼, 무너질 때도 감정적으로 붕괴되었습니다. 숫자가 무너진 게 아니라 신뢰가 붕괴된 순간이었죠.
결과|금융공학 착시가 남긴 진짜 교훈
2008년 금융위기가 남긴 교훈은 단순히 ‘금융공학이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기술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였습니다. 우리는 숫자와 모델이 모든 불확실성을 설명해 줄 수 있다고 믿고 싶어 했고, 그 믿음에 너무 쉽게 기대었습니다. 하지만 경제는 계산만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사람의 심리, 집단행동, 공포와 탐욕 같은 요소들은 언제나 모델 바깥에서 움직입니다. 금융공학 착시는 바로 그 지점을 가려버렸습니다. 보이지 않으면 없는 것처럼 느껴졌고, 그래서 대비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위험은 쪼갠다고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복잡해질수록 오히려 더 위험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요. 2008년 금융위기는 우리에게 기술에 대한 겸손함을 요구합니다. 계산을 믿되, 맹신하지 말 것. 정교한 시스템일수록 “이게 정말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가”를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 질문을 멈추는 순간, 금융공학은 다시 한번 안전한 얼굴로 다가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만들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경고처럼 남아 있습니다.